공지사항

구산선문에 대하여

법흥사 0 4,048

1. 해동최초산문 실상산문(전라북도 남원 실상사)

실상산문의 개조는 증각대사 홍척이다. 홍척은 가지산문의 도의와 더불어 서당지장으로부터 법을 이었다. 826년 당에서 돌아와 흥덕왕의 지원으로 828년에 실상산문을 개창했다. 선종이 유입 된 후 최초로 열린 산문이다. 당시 홍척은 도의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며 선종을 주도했는데 최치원은 봉암사 지증대사 비문에서“북산의 남악척” 이라고 표현했다. 실상산문은 홍척의 제자 수철에 이르러 크게 번창했으며 보물38호 증각대사응료탑과 보물 39호 증각대사 응료탑비가 남아있다. 개산당시 조성된 보물 41호 철제여래좌상도 현존한다.

2.선승들을 수도 없이 배출한 동리산문(전라남도 곡성 태안사)

동리산문은 적인선사 혜철을 시작으로 도선, 경보, 윤다로 이어지는 선승들을 수도없이 배출한 정통 선문이다. 서당지장의 법통을 전수받은 네명 가운데 셋이 신라인으로서 계림의 도의선사, 신라국의 홍직(실상산문의 홍척)그리고 혜선사라 하는데 혜선사가 바로 혜철이다. 혜철은 814년(현덕왕 6년)에 당나라로 건너가 서당지장의 선법을 이어 받고 839년에 귀국한 뒤 태안사에서 선법을 펼쳤다.4대 광자대사 윤다에 이르러서는 고려태조 왕건의 귀의를 받는 등 동리산문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3.선의씨앗을 뿌린 가지산문(전라남도 장흥 보림사)

도의선사의 법손 보조선사 체징이 840년(문성왕 2년)에 가지산문을 열었다. 837년 입당했으나 도의의 가르침을 벗어나 멀리서 도를 구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귀국하여 전남 장흥에 보림사를 짓고 승속들에게 선법을 가르쳤다. 자신에게서 불성을 찾는 도의의 선사상을 이어 선각선사 형미 등 8백여명의 제자를 배출하며 선풍을 크게 드높였다. 그때 다시 조성됐던 국보44호 삼층석탑 및 석등과 국보117호 철조비로자나불상이 남아있어 보림사의 역사를 증명해주고 있다. 일연스님과 보우스님도 가지산문 출신이다.

4사세와 법맥이 가장 화려했던 성주산문(충청남도 보령 성주사)

성주산문은 구산선문 중 사세와 법맥이 가장 크고 화려했던 산문이다. 낭혜무염은 태종무열왕 8대손으로 821년(헌덕왕13년)에 당나라로 건너가 마곡보철의 법맥을 이었다. 당에 있었던 20년간 보살행을 펼쳐 동방대보살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죽을 때 까지 물을 긷고 나무를 하며 살았으며 선종과 교종의 시비를 내치는 등 선교양립을 주창했다. 845년(문성왕 7년)에 귀국하여 성주사에서 1천여 칸의 당우를 조성했으며 2천여명의 제자가 그의 법맥을 이을 정도로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성주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현재 성주사지만 남아있다. 

 

5.엄정한 선기를 이어온 사굴산문(강원도 강릉 굴산사)

사굴산문을 연 통효국사 범일은 831년(흥덕왕 6년)에 당나라로 건너가 염관제안으로부터 선법을 이어받았다. 평상심이 도라는 깨침을 얻고 847년(문성왕 9년)에 귀국하여 굴산사를 창건했다. 범일의 제자 행적은 885년 당에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니 제자가 500여명이 넘어 밥 지을때 쌀뜨물이 동해바다까지 흘러갈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폐사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36년 홍수로 여섯 개의 주춧돌이 노출되었고 이때 굴산사였음이 밝혀졌다. 범일국사는 현재에도 강릉단오제(무형문화재 13호)의 주신인 ‘대관령 국사 성황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6.선의 위용과 기품을 떨쳤던 사자산문(강원도 영월 법흥사)

철감선사 도윤은 825년(현덕왕 17년)에 당나라로 건너가 남전보원의 법맥을 이은 뒤 847년(문성왕 9년)에 사굴산문 개산조 범일과 함께 귀국하여 금강산에서 입실 수도하였다. 징효대사 절중이 도윤의 법맥을 이었고 885년 강원도 영월로 자리를 옮겨 사자산 흥녕사를 크게 중창하고 1천여명이 넘는 승려가 모여 선지경학의 위용과 기품을 떨치니 이것이 사자산문이다. 절중의 뒤를 이어 여종 ∙ 홍가 ∙ 이정 ∙ 지공스님이 사자산문의 위세를 떨쳤다. 현재는 1995년 발굴된 흥녕선원지만 남아 있고 보물 612호 징효대사보인탑비는 법흥사 경내에 있다.

 

7.복원되어야 할 봉림산문(경상남도 창원 봉림사)

원감화상 현욱은 장경회해로부터 법인을 받고 837년(희강왕 2년)에 귀국하여 선법을 크게 펼쳤다. 현욱의 뒤를 이은 진경대사 심희는 900년경 봉림사를 세우고 종풍을 크게 선양하여 봉림산문을 형성했다. 심희의 제자 찬유화상은 ‘일심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때 500여명의 제자를 두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봉림사는 조선시대 때 폐사되었으며 봉림사지는 현재 잡초로 우거져있다. 보물362호 진경대사 보월능공탑은 서울 중앙박물관 뜰에 있고, 보물 363호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는 해체되어 서울 중앙박물관 수장고 안에 있다. 봉림사 3층석탑은 창원 상북초등학교에서 원래자리로 돌아갈 날 만을 고대하고 있다.

8.묵조선의 본류를 이은 수미산문(황해도 해주 광조사)

개산조 진철대사 이엄은 896년(진성여왕 10년) 당에 건너가 묵조선 조동종의 개조 동산양개 제자 운거도응에게서 6년 만에 법인을 받았다. 운거도응의 문하에서 가지산문 4대 형미화상과 함께 ‘해동의 사무외대사’ 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왕건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고려 개국 후 932년 왕건의 청으로 수미산 광조사에 머무르며 선풍을 일으켜 수미산문을 형성하였다. 광조사는 절터와 진철대사 이엄의 부도탑비만 남아있다.

9.선맥의 도도한 물줄기를 이어온 희양산문(경북 문경 봉암사)

879년(헌강왕 5년)에 지증대사 도헌이 봉암사를 창건했으며 양부화상을 거쳐 정진국사 긍양이 935년(태조 일팔년)에 희양산 봉암사를 중창하고 선풍을 선양하여 희양산문을 이루었다. 긍양은 혜능스님법맥 청원행사의 제자 곡산도연으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다. 924년 당에서 돌아와 선만을 고집하지 않고 선교일미사상을 계승하여 기존의 교학을 버리지 않으며 선을 닦아나갔다. 희양산문은 긍양 이후 지종으로 이어지며 명성을 크게 떨쳤으며 현재도 대한불교 조계종 특별선원으로서 3백여명이 넘는 수행자들이 이곳에서 정진하며 선풍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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